일
생존을 위한 활동이 노동이라면, 일은 창조적이며 주체적 활동이어서 자아를 실현하는 작업을 포함합니다. 교회의 일을 노동이라고만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사례비 혹은 급여를 받는
대부분은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는것이지요. 교회에서 만나는 대다수는 생계를 도와주는 존재로서 교회에 있지 않으므로 그것을 초월한 교회로서의 가치구현을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있습니다.
교회가 해야할 일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존입니다. 즉 생명이지요. 생명을 살리는 모든 일에 관심가져야합니다.
이것을 분류하면, 첫째로 생존이 걸린 노동문제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
문제에 개입하고 생존권을 위해 방어하며 싸워내 살려야하지요.
둘째로 임금과 돈을 초월한 가치를 위해 일해야합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모호해보이는 가치를 이 땅에 구체적으로 구현해내는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누구도 배제없이 사랑받을 권리가 있고 존중받으며 하나님의 자녀요 형상됨을 회복시키는 나라겠지요. 그 나라를 만들라고 오늘 여러분을 임명한것입니다.
특별히 노동의 가치와 연대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두번째 하나님 나라라는 모호하고
추상적 가치를 이땅에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교회는 그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래서 우리는 교회라는 곳에 모이는 것입니다. 내 생계를 뛰어넘는 일을 하기 위해
뛰어들고, 옆사람과 손을 잡는 것입니다.
임기가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임명직인 셈이지요.
교회는 생명을 지키며, 모두가 하나님 자녀로 사랑받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을 이해 우리는 다양하고 다른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안에
하나되어 모이는 것이지요.
해온 일
23년전 생명샘교회를 세우신 문성남 목사님의 굳건한 철학은 ‘교회는 움직이는 것’ 이며 , ‘건물과 제도가 아닌 사람이 교회’ ‘말씀이 기준되어야 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생명샘교회의 일들
포도나무 주일 (들음, 다름, 일치)
포도나무 주일은, 온전히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가지됨을 훈련하기 위해, 담임목사부터 듣는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생명샘교회라는 우리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기 위해 교회밖의 분들을 모셔서 말씀을 전할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외부에서 모실때의 기준 역시, 유명하고 잘 알려진 이들을 초대하는 시간이거나, 생명샘교회와 같은 색을 가진 이들만을 초대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11시 예배의 온전한 시간을 생명샘교회는 내어주는 훈련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은 때론 불편한 시간이면서 동시에 은혜롭고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포도원 농장의 정신을 위한 교회 - 한 몸된 포도나무 교회
예수님은 포도원뿐 아니라 포도나무를 강조하셨습니다.
특별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앤드류 머레이의 책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 주인이 누구인지 몸통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지이지 나무가
아닙니다.
가지가 나무가 되려하면, 그 나무는 죽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살고 지체들은 접붙어져 매일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무가
삽니다. 예수가 살아야 그 교회도 살고 지역도 삽니다.
둘째, 너희는 모두 가지입니다. 즉, 공동체성을 의미합니다.
목사이건, 장로이건, 어떤 직분이건 주님 보시기에
다 ‘가지’일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내에서의 서열화와 계급화는 언제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포도나무에서는 ‘너희는 가지니’ 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됨’을 인식하고 구분할때 참된 포도나무가 살아 역사합니다.
그래서 이 포도나무의 정신은 곧 주인의식, 그 주인은 한분이고 나머지는 모두 ‘연합’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만 가지가 아니라 너도 가지임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거나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주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장로나 직분이 주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조이 도우슨의 하나 됨
(조이 도우슨의 하나됨)
그 뿐만 아닙니다.
‘교회가’ 참 교회되기 위해서는 교회와 교회와 연합
교회와 선교단체의 연합들도 매우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큰 교회는 큰 교회끼리 연합하고
선교단체나 교회도 연합한다는 것은 참 힘든 상태입니다.
그 이유는 대개 간단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가지로 만들기 위해 내가 ‘가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주간 내내, 한달 내내 자기 프로그램으로만 가득차고
작은 교회들을 가서 돕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자기 것을 내어주는데는 힘들어 하고
무엇을 연합해서 하더라도,
꼭 자기가 주인되어 프로그램 해야만 속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러므로 보다 더 ‘가지됨’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포도 나무가지
나눔씨앗
한 교우님이 봉헌하신 100만원의 씨앗헌금으로 시작한 나눔씨앗은, 성경에서 매 3년마다 한번씩 모인 모든 봉헌물을 사회적 약자에게 나누었던 일을 고민하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제도를 교회의 상황에 맞게 개혁하여, 매달 세번째주일인 포도나무주일에 거두워진 봉헌물 전액을 이웃에게 나누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를 거쳐 해당 주간에 모이는
헌금이 줄어들자, 과거의 비율 그대로를 책정해 나누는 것으로 변경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제도를 개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정릉지역의 가정, 그룹홈, 소년원 사역, 장애인 시설, 꿈을 구현하는 기독 청년단체등에게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AMCM
AMCM(Acts Mobile Church Movement)는 쉽게 말하면 움직이는 교회 운동입니다.
생명샘교회는 예배당을 위한 건물이 없는 교회입니다.
선교헌금으로는 어려운 교회들을 도우며 함께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명샘교회는 지역교회로서 곤고하게 지역을 위하여 일하되, 내 교회만 위하여 살아가는 이기적인 교회가 되지 아니하고, 고린도전서 1:1~3절의 말씀처럼, 전 지역의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의 교회임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움직이는 교회 운동을 2009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먼저 시도된 운동으로,
특별히 교회의 규모가 대형교회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전교인들이 함께 움직여, 지역과 교회를 섬겨주고 있습니다.
현재 AMCM은 보다 발전되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AMCM이 되기 위하여, 2016년 정비 한뒤에 주일에 직접 자원한 성도들과 교역자가 원하는 교회에 찾아가 주일예배를 함께 드리는 방식 혹은 보다 해당 교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점검중에 있습니다.
사랑터치
연말이 되면 생명샘교회는 우리들만의 축제가 아닌 이웃들과 함께하는 사랑터치를 해왔습니다. 정해진 형식과 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상관없는 곳에 가서 흔히 말하는
시혜적 이거나 이벤트로 행사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담임목사가 입원했던 국립재활 병원에 찾아가던 일로 시작한 사랑터치는, 입원한 환우들, 연말혹은 연휴기간 집에가지
못한 분들을 위로하는 행사로 시작을 했습니다.
정해진 이벤트가 아니라 병원에서 요청하면 리마인드 웨딩, 혹은 입원 환자들의 외출을 돕는 일등을 해왔습니다.
병원의 행사에만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후 병원의
문이 닫힌뒤로는 마을 분들을 초대해 공연을 하거나 지역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는 일등을 해왔습니다.
이 모임에서 중요한 것은 ‘터치’입니다. 예수를 붙잡았던 12해 혈루병 걸린 여인이 살짝 옷자락을 붙잡듯이, 우리 역시 이 행사를 통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의 사람들에게 스치듯 마주하기를 원했던 사랑터치는 매년마다 행사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발성이 결여되거나 의미가 없다면 그 행사를 하지 않기도 합니다. 교회는 하던행사를 반복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곳을 채워주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달꿈 예술 대안학교를 위하여
1. 제도가 생명을 품을수는 없습니다. 생명은 제도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제도는 언제나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해야합니다.
특별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 제도는 결코 아이들 모두를 품을 수는 없습니다.
2. 그래서인지 한국에는 많은 대안학교가 있습니다.
대안이라는 말 자체가 가진 의미처럼 현존하는 교육 이외의 교육내용을 담겠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대안학교가 있다는 말 자체가 한국의 공교육이 무너졌음을 반증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 즉 길을 제안한 것입니다.
3. 꿈트리라는 이름으로, 토요일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열악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다양했습니다.
그룹홈 아이들, 시설추천 아이, 학교에서 추천한 아이, 장애가 있는 아이,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공통점이 있다면 경제적 여건이 어렵거나 현재 상황에서 다양한 예술적 교육을 받기 힘들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4. 아이들에게 낙인효과가 생기지 않기 위해 교회학교 아이들과 함께 꿈트리라는 제도 안에서 섞이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교회를 좋아했습니다.
저보다 더 교회에 오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이 생겼습니다.
5. 저는 돈이 없어서 무너진 청소년 단체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3년 가까이 공식적 후원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도, 단 한명의 아이만 있더라도 버텨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아니라,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만 알곡처럼 남아있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돈으로 상처받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을 치료해줄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6. 달리다꿈, 줄여서 ‘달꿈 예술 학교’
꿈트리의 새로운 대안학교 이름입니다.
‘달리다쿰’ - 소녀여 일어나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제도로 아이들의 생명을 죽은것 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죽은거 아니야 자는거야 일어나면
돼”
달리다꿈!
줄여서 달꿈 예술 대안학교의 주된 과제는 예술을 통해 예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7. 학교의 주된 학생들의 폭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이미 대상은 말씀을 통해 정한 바 있습니다.
그 대상은 이 땅에 나그네 된 아이들 이었습니다.
고아와 과부가 누구일까 고민해보니 이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미혼모 가정, 그룹홈, 다문화 가정,학교밖 청소년, 장애가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 가운데에서도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서 현재의 교육 제도상 제대로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이었습니다.
8. 아이들 대상의 폭을 좁혀야한다는 고민이 됩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제도상 하나의 대상을 정하고 표준화시키고 커리큘럼화하는 것이 사업비 지원을 받기가 쉽고 제도를 만들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위에서 제시한 그 아이들이 이미 우리가 꿈트리를 하며 만났던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쉬운 길은 분명히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9. 사업비 지원을 받기는 조금 더 어려워질수 있겠지만,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이라면 우리가 먼저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정말 기독교적 대안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달꿈 학교는 기본적으로 학비없는 학교가 되려 합니다.
책임을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도전해보려 합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돈때문에 너희를 가르치는게 아니라
정말 사랑해서 가르친다고 믿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 사랑이 구현되어야 아이들이 주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아이들이 상처받은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사전에 필요했던 작업이 있었습니다.
정말 이 달꿈 학교가 이 시대에 대안이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녀봤습니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컨설팅 해주는 회사와 기독교 대안학교 연구센터에 가서 대안학교의 현황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꿈트리 (달꿈)의 정신으로 운영되고 있는 예술학교가 있는가가 궁금했습니다.
학비 없는 학교,
한명의 운영 주체가 아닌 신실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의해 운영되는 학교,
나그네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술 학교
그리스도의 정신이
확연한 학교
이런 학교가 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돌아온 대답은 “네”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런데 어렵잖아요 버티기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 그런 학교가 없다고 하니 정말 대안학교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이랍니다. 그 이유는 돈
때문이랍니다.
어쩌면 오늘을 위해서 지난 광야를 보내게 하셨던 하나님 뜻이 있었나봅니다.
역시 우리 주변은 빈 틈이 없습니다.
12. 달꿈 예술학교는 그래서 먼저 한 사람에게 집중할 생각입니다.
더 많은 아이들, 더 많은 프로그램 보다,
한 명의
아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뮤지컬로 선교를 하겠다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 한명을 놓고 기도하고
커리큘럼을 준비하고 선생님들이 모여 가르칠
생각입니다.
미국에서 집회할때 받았던 대안학교 씨앗헌금들이 귀하게 사용될 예정입니다.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하는데 사용되게 될 것 같습니다.
13. 한 친구가 대안학교 진행과정을 물어보고 현장을 보더니 말합니다.
“내가 월드비전 후원하던거 16만원 있는데 여기에 다 드릴게. 그래도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아직 아무에게도 후원을 받고 있지 않은 제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그래도 끊지 마. 아프리카 아이들도 살아야지”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곳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한데, 먹이기만 하면, 절대로 안바뀌더라고. 많은 애들이 아니라 한명의 애를 바꾸는 교육이라면 당장
투자해야지”
말이라도 고마워서 1월중 운영비를 위한 오픈 예배와 공연에 초대했습니다.
공연을 보고 아이들도 만나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돈은 적건 많건 투자하면 끝인거야. 돈을 투자하던가 가르치던가.
나는 가르칠수 없으니 투자하는거야.
투자하면 그 자리에 없는게 애들을 위해 좋아.”
14. 믿음 없다 생각했던 그 친구의 믿음이 놀라웠습니다.
해결해야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학교 소개서를 스토리북으로 만들어야 하고
이제 학교 소개서를 기초로 한 대외용 소개서와
후원 제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학생 모집과 선생님들을 모집해야 합니다.
게다가 대안학교 공사 완공을 위해 남은 일들과
옆 집들과의 문제 해결,
또 소송등이 남아있습니다.
무엇이 됐건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저도 역시 운영 일선에선 뒤로 물러가
그저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하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15. 어른들의 사고방식으로
어른들의 제도와 시스템으로 결코 아이들을 살릴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 “달리다쿰!”
“일어나라 소녀야” 라는 그 메시지만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땅에 대안을 제시하는 기독 예술 대안학교가 되기를
돈 때문에 예수 이름을 지우지 않기를
돈 때문에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기를
돈
때문에 사랑하는 일보다 제도 만드는 일에 앞서지 않기를
AYC콘서트
한국교회의 갈등과 분열을 몸소 겪은 생명샘교회는 이제는 서로 다른 교회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안에서 마음으로만은, 그리고 예배만은 하나될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화해와 일치를 위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그 외의 일들
- 2015년: 한 사람의 꿈을 위해 교회 행사를 멈췄습니다.
- 2017년 중국 화장실 공사: 기도실 천장이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도 다른 공동체의 화장실을 지어주는 일
- 2021년: 선교사 파송 (부족한 선교비를 위해 전부서에서 함께 기금마련)
- 선교바자회: 부족한 선교기금을 위해 년2회 바자회를 엽니다.
해야 할 일
지금까지 걸어온 길처럼 해왔던 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장애를 가진 담임목사, 다양한 거리에서 모이는 성도들, 재개발 지구의 건물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함 가운데에 서
있는 생명샘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래서 여전히 타자들의 생존과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구현해가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생명샘교회는 교회 소개에서 보신것처럼 약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약한 것을 자랑합니다.
그 믿음으로 생명샘교회는 희년이라는 가치를 이 땅에 구현할 것입니다.
왜 희년을 고민해야하는가
과거 하나님은 안식일,안식년,희년이라는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희년을 통해 하나님만이 이 땅의 주인되심을 선언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주인되셔야했을까요? 오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기준될 때 이 땅에 사람들은 서로 갈라지지 않고, 다름을 존중하며 각자가 독립적이되 연대할수 있음을 매우 세밀하게 디자인하셨습니다.
희년의 정신이란 안식년이 7번 반복된 다음해인 50년째해가 되면, 자기 지파의 땅으로 기업들이 돌아가고 , 땅은 안식을 갖게 됩니다. 그걸 통해 재물이 백성들을 지배하지 못하며 백성들이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게 되고 사람을 노예로 부리던 것에서 서로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예 해방, 채무 면제, 땅과 집이 회복되는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정신은 희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7년째가 되는 안식년의 궁극적 의미는 사람이 노동하다 망쳐버린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식년이 되면, 땅은 쉬어야 했습니다. 그를 통해 노예들도 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서 난 모든 것들을 종들은 물론 나그네나 땅에 있는
들짐승까지도 나눠먹어야 하니, 안식년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이 이 땅의 주인이 아닌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모든 생명을 존귀히 여겨야하는 것이 노동의 참된 가치였음을
알려주십니다.
마찬가지로 그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안식일을 주신것입니다. 7일마다 한번씩 반복해 기억하는 사람만이, 해가 지나도 기억하고, 해가 지나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평생을 살아 50년이 되었을때나, 자신이 거부가 되었건 가난하건 상관없이 자유함으로 살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년은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안식일과 안식년의 가치를 지키려고 주일예배를 드리고 안식년에 쉼을 갖기도 하지만 희년의 정신을 제도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희년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교회가 기억해야할 가치는 ‘하나님이 우리 공간의 주인되심’입니다. 나아가 서로를 존중할수 있는 겸손함이며, 한분되신 하나님안에 과연 우리가 한 형제요 자매인가에 대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교회밖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존엄을 선포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생명샘교회는 이런 꿈을 꾸며 희년 공동체를 하나씩 구현하려고 합니다.
희년 공동체 예배는, 한 분 되신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의 공간에서 예배드릴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며, 공간의 주인이 하나의 교회가 되지 않음을 인정할수 있는가입니다.
또한 각 교회의 정체성과 비전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 함께 하는 사역과, 각
교회마다의 독립적 사역의 공존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이를 통해 교회가 크거나 작거나, 크기를 논하지 않고 함께 자신의 주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안에 한 지체가 되는 모형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생명샘교회가 일구어갈 희년 공동체는
예배는 유일하신 한분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의 모양과 형태가 다 달라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각자 다른 사역들을 추구하기도 하지요.
자본주의 시대에 교회가 무엇부터 먼저 해야할까? 지난 역사를 통해 교회의 정의, 공간에 대한 정의와 고민, 그리고 고통을 거쳐오며 우리는 공간을 사유화하지 않고 하나된 예배를 드릴수 있는 희년 공동체 예배를 꿈꾸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연합예배를 합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또한, 공간을 시간을 달리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요
생명샘이 꿈꾸는 희년공동체는 무엇이 다를까요? 과거 연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절기 행사 에만 국한하지 말자는 정신을 토대로, 교회의 규모를 갖추거나 능력을 갖춘 교회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연합예배의 형식을 버리는 것의로 출발합니다.
생명샘교회는, 우선,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을 공유하여 함께 예배드릴수 있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최대현장인 교회 예배당, 어느덧 예배의 주인은 교회가 되어버린 현실앞에서, 공간에 대한 주권이 희년의 정신이라면, 교회는 공간의 공유를 통해 하나님이 주인되심을, 그리고 각자의 독립성을 보장함으로 평등의 정신을 추구해야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희년 공동체 예배
- 한 공간에서 하나된 예배를 드리고 각 교회의 정체성과 비전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
- 희년의 정신으로 함께 하는 사역과, 각
교회마다의 독립적 사역의 공존
이를 통해 교회가 크거나 작거나, 크기를 논하지 않고 함께 자신의 주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안에 한 지체가 되는 모형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희년 공동체 예배가 궁금하신 분은 다음의 신청서에 문의를 남겨주세요
희년 공동체 문의하기 (구글폼)

















